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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내 수해 현장
작성자 남ㅇㅇ 작성일 2002.09.04 조회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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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이 안전하다고, 내가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곳이면 또 몰라도 바로 내 고장 우리들의 이웃에서 사람까지 죽고 실종된데다 누울 자리마저 잃고 생명의 터전이 매몰되었다니...
어렵사리 만든 봉투 하나를 들고 집행위원 두분과 함께 동부고원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쓰러진 벼를 보면서 “못세워요. 다 쓰러졌는데 어떻게....”하며 말꼬리를 잇지 못하던 집안 동생 생각이 난다. 들의 벼는 질펀하게 누워있는데 인적이 없다. 아예 보지 않은 것이 뱃속이라도 편하다는 것인지.
여원치를 넘으며 긴장해 들녘을 본다. 생각보다는 쓰러진 벼가 그리 많지는 않다. 비만 집중적으로 내렸지 바람이 심하게 분 것은 아니었던가?
그러나 운봉면 소재지를 지나고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둑이 터져서 누릿누릿 익어가는 벼가 매몰된 현장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고기리 지역부터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 모양이다. 광천의 흐름에 따라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황산교를 건너면서는 상황이 급박해졌다. 물이 황산교를 넘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길은 흙탕을 치운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피바위 근방에 산사태가 난 것을 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흙탕물이 람천으로 빠지지 못하고 도로를 타고 흐른 모양이다. 건너편 작은 계곡 아래 농경지가 묻혀버렸고 물의 흐름이 나타난 람천이 무서워 보인다. 저기까지 물이 차 흘렀다면, 둑을 넘어 보이는 곳도 보인다. 인월을 앞두고 무너진 제방은 식은땀이 나게 한다. 저기가 터졌으면 인월을 쓸어버렸을텐데 아슬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굴삭기가 위태로워 보인다.
인월리가 물에 잠겼다는 보도를 들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우냉동 앞, 물길이 휘돌아 가는데 이번 호우는 직선으로 빠져나갔다. 수헥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농경지가 돌과 모래로 뒤덮여버리고 굴삭기 한 대가 참으로 외롭게 돌을 치우고 있다. 측량기가 없이는 자기 땅을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겠다. 그러나 금년 식량은?
중군리 입구 다리부터는 형용키 어려운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주유소 공간에는 적어도 20년생 이상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굴러 있었고 진흙탕 바닥을 아주머니 혼자 흙탕을 밀어내고 있다. 이어 물줄기가 흐를 법한 곳은 모두가 직선형태의 산사태가 나 하얀 바위 속살이 드러나 있다.
산사태가 심한 곳은 지금도 작업 중이어서 차량은 편도 통행으로 지체되고 있다.
그러나 인월면과 산내면 경계지역에는 가옥이나 농토가 없어 산사태 상황만 치유되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아 보인다.
산내면에 들어서면 첫마을 백장리. 감전으로 사망자가 생기고 산사태가 밀려와 가옥 수채가 파손되었다는 마을이었지만 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지나려 하는데 강쇠 쌈지공원 다리가 어찌나 위태로운지 운전자가 겁을 냈고 일렬 교차 통행을 해야 했다. 그 많던 장승들도 몇 주 남지 않아 보였고 온통 바위와 돌과 흙과 나무들이 뒤엉켜 널브러져 있다. 수해도 수해이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간신히 빠져나가다보니 퇴수정 앞이 모래와 돌로 광활해져 있다. 역시 물길이 직선으로 빠져나가 퇴수정 앞의 숲이 섬으로 떠올랐던 모양이다. 아니 섬도 잠겼지만 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버텼던 모양이다.
일성콘도 앞에는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송들이 도로를 향해 넘어졌었던 모양으로 잘게 잘리어 도로 옆에 치워져 있다.
산내면 사무소 쪽으로 돌아 대정리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흙탕에 버무러진 비닐 장판이다. 막 걷어낸 모양이다. 이어....
목불인견의 참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우중에 누전이었던가 불에 검게 탄 화재의 잔재를 굴삭기가 걷어내고 있고 누가 보든 말든 우선 식기류를 찔찔거리는 물로 씻고 있기도 하며 구멍이라는 구멍은 모두 뚫려버린 가옥들.
“어! 물나온다.”는 말과 함께 농협 판매소 앞에 쌓여진 젖은 상품들에 물줄기를 쏟는다. 진흙투성이의 길에 구두를 신고 온 자신의 입장이 스스로 이방인임을 입증하는데 어디 한 사람에게 말조차 걸어볼 수가 없다. 군인도 보이고 경찰들은 지쳐빠진 채 한쪽에 모여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샛거리를 먹고 있는데 소대형 굴삭기는 흙과 건축물 잔재가 뒤범벅된 쓰레기를 여기 저기에 쌓고 있다. 그러니까 식기류를 씻을 수 있는 정도는 약소하다는 건가...
누군가 알은체를 한 것 같다. 농협 지소장이다. 물이 사무실 천정까지 찻다고 한다. 사람목숨건진 것만도 다행이란다. 어제(9. 1일)까지만 해도 앞 도로에 흐레가 30㎝이상 쌓여 있었다고 하며 앞의 공터를 가리키며 추어탕집이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재난지구로라도 선포가 되어야 할텐데...2억5천만원의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한숨이 꺼진다.
저쪽에서 한무리의 군인들과 몇 사람의 민간인들이 온다. 보니 최진영 시장님이 군인들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며 오고 있다. 옆사람은 별이 세 개였다. 아까 군용헬기가 떴었는데 거기서 내린 모양이다. 시장님이 중장님게 우리를 소개한다.
“시민단체에서 염려가 되어 이렇게 나오셨네요.”
우리는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괜히 걸리적거리는 이방인 이상일 수가 없었다.
시장님이 저기 원천 마을도 수재가 심하고 중황리가 가장 심하다고 하신다.
그옆에 말도 못하고 눈으로만 찾던 면장님이 계신다. 낯부끄러운 봉투를 내밀며 수고하신다고 했더니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경실련 형편이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아는데요.”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되풀이 하신다. 부끄러운 뒤통수를 감추듯 자리를 뜬다.
원천마을은 마을 뒤의 계곡물이 마을을 관통하고 도로를 넘어 앞들을 휩쓸어 버렸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도망치듯 백일리에 들어섰다. 도로 가운데는 흙탕물이 고여 있고 가장자리로는 뻘흙이 그대로 질퍽거린다.
우선 실상사로 들어가 스님을 찾아뵙는다. 공동대표이신 도법스님은 어데서 무슨 일을 하셨던가 다가오시며 반긴다.
“절은 그런대로 안전한데...” 백장암도 흙이 밀려와 절집은 다치지 않았으나 심각하고 국보 삼층석탑과 보물 석등도 위태롭다 하신다. 가장 심각한 건너편 마을에 대해선 입을 다무신다. ‘가보면 알거 아닌가?’
대충 보고 말씀을 드리고 백일리로 향한데 한 대의 차량이 지나다니기 어렵고 차 아래가 돌과 구릉에 부딪혀 계속 덜컹거린다. 쓰러지고 묻힌 집채속에서 굴삭기가 연신 돌아가며 건물 안에서 흙을 파내고 도로의 바위와 흙을 치우고 있다.
우리의 차량운행은 오히려 작업을 더디게 할 뿐이다. 간단하다.
삼봉산 능선이 감싸안아 거대한 산태미 형의 지형인데 그 물이 관통하는 마을이 중황리와 대정리이다. 삼봉산 능선으로 감싸인 모든 물이 중황, 대정, 백일리를 덮어 버린 것이다. 들어가 볼 수는 없고 들어가 보아서도 안될 입장이다. 이미 도로변의 참상이 웅변해주고 있는데 바쁘고 가슴아픈 수재민들 속에서 더 이상 이방인으로 버틸 재간이 없다.
다시 도망치듯 나와 가끔 들르던 실상사 앞 식당에 들어가 사정 얘기를 좀 들으려는데 문이 잠겨있고 낯모르는 사람이 뻘 흙을 치우고 있다. 물었더니 큰동서가 실종이 되어 거기에 가 있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바로 실종되었다는 분이.... 그래서 물에 찼던 식당도 치우질 못하고.... 언제 어디에서 시신을 찾을 수 있을꼬?
차를 돌려 도망치듯 나오면서 백장리 때문에 고심이다. 들러가야 할 것인지, 그냥 도망가야 할 것인지.... 가진 것이라고는 벌건 손바닥뿐인데.
그러나 차를 세웠다. 마을 입구에 넋이 나간 듯한 두 분이 길바닥에 앉아 계신다.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했으나 맞는 인사인지도 모르겠다.
그분들 머리위로 몇 그루의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고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걸려있다. 물만 빼내고 모든 것을 안을 요량이었던 같은데 다 흘려보내버리고 쓰레기만 걸려 있다. 마을은 처참했다. 백장암으로 오르는 길은 S자의 수 없는 반복이었는데 길은 흔적만 남았을뿐 수백미터가 직선으로 뚫려 마을을 관통하고 느티나무를 지나 도로로, 이어 람천으로 쏟아져 버렸다.
집은 동강이 나버리기도 했고 마당은 젖은 흙으로 진탕이 되어 있는데 반나마 넘어진 전신주는 그래도 다행이고 누워서 편하게 잠들어 있기도 하다. 돌, 바위는 제자리를 잃은 채 아무데나 굴러있고 쌓여있고.... 여기에는 굴삭기 하나도, 외부의 어떤 방문객도 없다.
차일이 처진 집이 길 옆에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늦은 점심인지 샛거린지를 먹고 있다. 짐작이 가는 바 있어 피해간다. 노인 한 분이 다가 오신다.
“허망하시겠습니다.” 마지못해 인사를 한다.
“내평생에 이런 일은....”하기야 말을 이어서 뭐할 건가.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 감사합니다.”라신다. 이렇게 낯뜨거울 일이.
더 황망스러운 것은
“저기가 우리집이오. 가서 술 한잔 하고 가셔야지.”그러고 보니 술이 한잔되시긴 하셨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그러나 막무가내다. 복숭아로 담아 논 술이 있으니까 한잔하고 가야 된다는 것인데 그 기세가 하도 등등하신데다 어른 말씀 대접으로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겠다.
끝까지 사양한다면 뒤통수에 오물이 쏟아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저게 서 있을까 싶은 바로 아래 외롭게 선 화장실은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주변이 다 파였는데 여섯발 달린 곤충 떼지어 춤추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가자.’
농사지으며 대학을 4명 보냈는데 모두 내려왔단다. 집이 그대로 서 있는게 다행이랄까. 방자리는 다 걷혀있는 집에서 염치를 거두어 짊어진 채 감전사 상가를 바로 앞에 두고 산복숭아 술을 땅콩으로 한잔 마셔야 했다.
큰딸인 듯 보이는 분이 섬닷해 미안하다는 듯
“물이 안나와서..”하며 얼굴을 붉힌다.
“아, 아닙니다. ”그러면서 쓰디쓴 웃음을 삼킨다.
‘물, 물투성인데요.’
그리고 도랑이 되어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도망치듯 마을을 또다시 빠져 나왔다.
마을 입구에는 여전히 느티나무가 쓰레기를 안고 있었다. 이 느티나무가 버텨내질 못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우리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술대접을 받았던 그 집도, 그 이웃집도, 건너편 상가도 지금은 흔적조차 없으리라.
오! 자연이여!
돌아오는 길에 혼자 넋두리를 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대도시 그 높으나 높은 건물의 저 윗층에 사는 60평, 80평, 또 몇 평하는 그런 건물들 속에서 땀을 흘리지 못해 돈내고 땀빼는 그런 사람들보다 저 순박하시고 지순하신 분들께서 더 큰 죄를 졌습니까? 맨손 쥐고 찾아와 폐허에서 술대접 받고 가고 있는 무리가 저분들 보다 죄가 적다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무심하시다지만 이는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아직도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무력한 단체를 시민단체라 자처하면서 이끌어보고 지탱해 보려는 스스로의 무력감에 쓰디쓴 웃음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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