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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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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의원 양해석 일자 2018.10.19(4)
회의록 제226회 제2차 본회의 바로가기 동영상 5분자유발언 동영상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원시민 여러분!
윤지홍 의장님을 비롯한 동료의원 여러분!
이환주 시장님을 비롯한 일천여 공직자 여러분!
남원시의회 양해석 의원입니다.
최근 향교동 용정마을 앞 도로공사 추진과정에서 전라북도 지정기념물 제79호인 ‘남원사직단(南原社稷壇)’의 옆 절개지가 파헤쳐지고 그곳에서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라온 나무들이 뿌리채 뽑힌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우리 지역의 문화재 보존에 대하여 본 의원과 많은 남원시민들에게 늦게나마 각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 의원은 오늘‘남원사직단(南原社稷壇)’과 같은 지역에 있는 지역문화재임에도 남원시민들과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는 ‘유애묘(遺愛廟)’에 대해서 사직단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사직단(社稷壇)’은 국토의 보존과 곡식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한 국가의 제사 시설로 토지신인 사신(社神)과 곡물신인 직신(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토지와 곡식은 나라살림의 원천이었기에 사직(社稷)은 곧 국가를 상징하기도 하였으며 종묘(宗廟)와 함께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는 말로 ‘국가’ 자체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던 상징적인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직단을 세웠는데 고구려 제18대 고국양왕때나 신라 선덕왕때 사직단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 성종10년에는 사직제사에 대한 정리된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천도시 궁궐 예정지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주례(周禮)의 규정에 따라 종묘는 좌측 동쪽에, 사직단은 우측 서쪽에 정하였다 합니다.
조선 태조3년(1394년)에는 한양에 ‘도성사직단’을 세우고 음력 2월과 8월에 왕이 친히 나가 사직대제를 지냈으며 태종6년인 1406년에는 전국의 부 목 군 현에 지방사직단인 ‘주현사직단’을 세우는 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정조9년인 1785년부터는 전국의 지방 수령에게 지방의‘사직단’과 ‘성황단’‘ 여단’의 제단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왕명이 내려져 지방 관아에서 직접 사직단을 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때에는 전국 13도 339군에 사직단이 대부분 설치되어 조선 500년의 국가의례와 황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제국은 하늘에 제사드리는 ‘환구단( 丘壇)’과 ‘사직단(社稷壇)’의 제사를 중지시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1945년 해방되기까지 대부분의 제례가 폐지·축소되었으며 한양과 지방의 사직단도 폐쇄되거나 대부분 훼철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남원사직단’은 일제 강점기에도 헐리지 않고 500여년 동안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사직단입니다.
일제 강점기 지역 유지와 유림들은 남원사직단을 ‘기곡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일제의 사직단 훼철의 대상에서 벗어났고 ‘기곡단 유지계’를 조직하여 돈을 거출하고 논을 매입하여 위토(位土)답을 만들어 제수비용을 해결함으로써 매년 제사를 궐사(闕祀)하지 않고 지냄으로써 조선시대의 원형을 보전할 수 있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현재 사직단이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서울을 비롯해 7곳(대구 수성구와 달성구, 광주 광산구, 충북 보은, 경남 산청, 경남 창녕, 강원도 삼척)밖에 되지 않으나 그곳은 모두 해방 이후 발굴하거나 복원한 것입니다.
우리 남원의 사직단처럼 그 자리 그 터에서 끊이지 않고 사직제를 이어오면서 과거의 원형을 보존한 곳은 전국적으로 남원이 유일합니다.
올해의 남원사직단 제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서울의‘사단법인 사직대제보존회’에서 남원에 내려와 남원사직제의 제례순서와 홀기에 맞추어 제례를 봉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지역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사직단의 가치를 남원인보다 오히려 외부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남원사직단의 훼손된 부분은 조경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최대한 원형을 복구토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말씀 드리며 앞으로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 남원에서는 정월이 되면 원님들이 사직단에 나가 친히 제사를 드리고 그해의 풍년과 고장의 안녕을 기원하였으며 근대에 와서도 시장, 군수 및 남원시 농업관련 모든 단체장, 심지어 법원장, 교육장까지도 참석하여 제향을 올렸다고 합니다.
제물도 남원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곡물과 채소, 과일을 중심으로 80여종이 올려졌으며 제사를 마치고는 지역의 기관장을 비롯한 농업 관련 공무원들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위토답에 모내기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관선 시장때까지 이어져 오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 사라지고 현재는 ‘남원사직단관리위원회’의 60~70대의 계원들 20여명 만이 매년 5월 권농일과 음력 10월 3일 추수감사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농업 관련 예산이 남원시 전체예산의 24%를 차지하고 농업인구가 전체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도농복합도시인 남원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시장님이 직접 챙기고 헌관으로 참여하여 관련 공무원과 농업인, 그리고 남원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제언 드립니다.
다음은 도지정문화재자료 제57호인 유애묘(遺愛廟)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원사직단이 위치한 용정마을 뒷산에는 조선시대 세종조때 남원부사를 지낸 김희(金凞)부사의 묘소가 있으며 ‘남원교육문화회관’ 옆 동충동 186번지에는 김희부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인 유애묘(遺愛廟)가 있습니다.
김희 부사는 재임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되 지극히 인자하였고 판결이 명백하고 공정하여 주민들의 칭송이 높았고 주민들이 태평가를 부르며 그의 덕을 찬양하였는데 불행히도 재임중에 병을 얻어 자식이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백성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세웠는데 그의 애민정신을 높이 사 ‘유애묘(遺愛廟)’라 하였다고 합니다.
유애(遺愛)는‘유애재민(遺愛在民)’에서 유래된 말로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유애(遺愛)’라는 말이 들어가는 시설물은 전국에 단 3곳뿐이라고 합니다.
조선중기 합천군수를 지낸 이증영의 ‘유애비(遺愛碑)’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22년(1589년) 정읍 현감으로 부임해 1년 반정도 근무하다가 전라좌수사로 옮겨갈 때 그 지역 선비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 ‘유애사(遺愛祠)’가 전부입니다.
김희부사의 덕을 기리는 제사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데 현재는 ‘남원기로회’에서 4월과 10월 초정(初丁)일에 자체예산으로 제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봄 제사는 시내의 사당에서 지내고 가을 제사는 용정마을 뒷산 무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백성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유애재민(遺愛在民) 정신의 김희 부사를 공직자의 표상으로 삼아 우리 남원시의 신임공무원 교육시 ‘유애묘’참배를 의무화하고 ‘전라북도공무원교육원’에서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과정에서 김희 부사의 유애정신 교육과‘유애묘’참배를 기본과정으로 삽입하여 ‘유애재민(遺愛在民)’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릴 수 있기를 제언합니다.
이상으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오늘(19일)부터 제26회 흥부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즐겁고 성공적인 축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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